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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을 시작할 때 여기저기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여유자금으로만 하세요." 저도 그 말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쓸 데가 없는 돈이었고, 없어져도 생활이 무너지지는 않을 금액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수익률이 마이너스 70퍼센트까지 내려가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여유자금이라는 말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유자금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어떤 돈에는 반드시 선을 그어야 하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여유자금 판단 기준 금액과 기간 비교

1. 여유자금이라는 말, 저는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여유자금은 금액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날려도 당장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이 기준으로 금액을 정했고, 그 안에서 움직였으니 문제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여유자금을 가르는 것은 금액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 금액 기준: 없어져도 되는 돈인가
  • 시간 기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돈을 안 건드릴 수 있다고 내가 보장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할 수 없으면, 금액이 아무리 작아도 여유자금이 아닙니다. 돈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코인 돈"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해 둔다고 해서 그 돈이 다른 용도로 안 불려 나가지는 않습니다.

내 경험담

저는 분명히 여유자금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이너스 70퍼센트까지 내려가 있을 때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졌습니다. 여유자금이 아니어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여유자금이었던 돈이 어느 날 갑자기 여유자금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제가 미리 헤아리지 못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그 다음이었습니다.

2. 값이 떨어져 있을 때 급전이 필요하면 벌어지는 일

문제는 급전이 필요해진 시점을 우리가 고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하필 값이 반토막 나 있을 때 온다고 해서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그때 손에 쥔 선택지는 셋뿐입니다.

  • 판다: 손실이 그 자리에서 확정됩니다. 회복을 기다릴 기회가 사라집니다
  • 빌린다: 손실은 그대로 둔 채 이자까지 얹습니다. 가장 나쁜 조합입니다
  • 다른 것을 판다: 보험을 깨거나 적금을 해지합니다. 손해가 다른 칸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셋 다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상황에 좋은 선택지는 없습니다. 선택지가 없어지기 전에 미리 갈라 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팔 수 있다"와 "팔아도 되는 때다"는 다릅니다

코인은 24시간 열려 있고, 주식처럼 결제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급할 때는 이게 장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점이 오히려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이나 예금은 급하다고 해서 바로 현금이 되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이 어떨 때는 방어막 노릇을 합니다. 코인은 그 방어막이 없습니다. 새벽 세 시에도 손실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팔 수 있다는 말은 언제든 최악의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코인 손실 중 급전 필요할 때 세 갈래

3. 퇴직금과 노후자금에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

여기서부터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입니다. 아래 돈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밖에 두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 퇴직금·퇴직연금: 다시 못 만드는 돈입니다. 월급처럼 매달 새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 전세보증금·이사 자금: 쓸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시장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 1~2년 안에 쓸 학자금·의료비: 미룰 수 있는 지출이 아닙니다
  •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값이 떨어지는 동안 이자는 그대로 붙습니다

퇴직연금 계좌에는 한 가지가 더 걸려 있습니다. 그 계좌 안에서는 애초에 코인을 살 수 없습니다. 사려면 계좌를 깨서 돈을 빼내야 합니다. 저는 "깨야만 넣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굳이 벽을 세워 둔 자리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모릅니다

퇴직연금을 중도에 빼낼 때 세금이 정확히 어떻게 붙는지는 계좌 종류와 인출 사유에 따라 갈립니다. 저는 이 부분의 세부까지는 모릅니다. 확인하시려면 가입하신 금융회사 연금 창구나 국세청 상담을 거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다만 세금을 따져 보기 전에, 깨야 한다는 조건에서 이미 멈추시는 게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50대에게 다른 것은 금액이 아니라 남은 시간입니다

같은 마이너스 70퍼센트라도 스물다섯 살과 쉰다섯 살에게 같은 숫자가 아닙니다. 앞사람은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있고, 뒷사람은 그 시간을 사는 값이 훨씬 비쌉니다. 저는 이 차이를 늦게 알았습니다.

산수로 보면 더 분명합니다. 100만 원이 70퍼센트 빠지면 30만 원이 됩니다. 이 30만 원이 다시 100만 원이 되려면 70퍼센트가 아니라 233퍼센트가 올라야 합니다.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의 계산이 다릅니다. 이 차이를 메우는 데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 몇 년을 기다릴 수 있느냐가 나이에 따라 갈립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코인 사서 진득하게 기다리라"는 조언을 50대에게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락장이 3년, 5년 길어져도 젊은 사람은 본업 소득으로 버팁니다. 노후 계획을 짜야 하는 나이에는 돈이 묶여 있는 것 자체가 계획을 흔듭니다. 기다림이 전략이 되려면 기다릴 시간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4. 저는 이렇게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지금은 쓰고 남는 돈으로만 합니다. 한 번에 몇십만 원 정도씩, 남으면 넣고 없으면 건너뜁니다. 재미없는 방식이지만 최소한 급전이 필요할 때 코인 계좌를 쳐다보지 않게 됐습니다.

몇십만 원이라도 마음까지 소액은 아니었습니다

원칙을 세워 놓고도 잘 안 되는 대목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물타기입니다. 몇십만 원만 넣겠다고 정해 놓아도, 계좌가 반토막이 나면 "이십만 원만 더 넣어서 평단가를 낮추면 금방 빠져나오겠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액으로 시작한 판이 커지는 자리가 대개 여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세창에 뺏기는 시간입니다. 들어가 있는 돈이 삼십만 원이어도 하루에 앱을 열 번 넘게 엽니다. 일하다가도 머릿속 한구석에 코인이 떠다닙니다. 넣은 돈은 소액인데 쓰는 신경은 소액이 아닙니다. 저는 이 비용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액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금융위원회 실태조사를 보면 이런 흐름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2025년 하반기 기준 국내 거래소의 거래 가능 계정은 1,113만 개로 6개월 전보다 3퍼센트 늘었고, 100만 원 미만을 들고 있는 소액 이용자도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87조 2,000억 원으로 줄었고 일평균 거래금액은 15퍼센트 빠졌습니다. 시장은 식었는데 사람은 늘어난 모양새입니다.

소액으로 나눠 담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인데, 저는 이걸 마냥 안심할 일로 보지는 않습니다. 금액이 작으면 관리도 느슨해집니다. 어디에 얼마를 넣었는지 잊고, 세금 신고할 때가 되어서야 계좌를 열어 봅니다. 2027년부터 가상자산 소득에 세금이 붙게 되어 있는 만큼, 작은 금액이라도 기록은 남겨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선을 다시 그으실 때 저는 이 순서를 권합니다.

  • 급전 통장을 먼저 만듭니다. 생활비 서너 달치가 아무 데도 안 묶인 채로 있어야 합니다
  • 3년 안에 쓸 일이 잡혀 있는 돈은 전부 뺍니다. 금액이 아니라 날짜로 자릅니다
  • 남은 돈 안에서만, 매달 정한 금액만큼 넣습니다. 좋아 보인다고 늘리지 않습니다

코인 여유자금 선 긋기 확인 네 가지

여유자금은 금액이 아니라 약속이었습니다

"여유자금으로만 하세요"라는 말은 사실 반쪽짜리 조언입니다. 여유자금이 얼마인지 정해 주지 않고, 그 돈이 계속 여유자금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전제가 깨지는 걸 직접 겪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50대에게 진짜 여유자금이 넉넉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여유자금으로 하세요"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건 금액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돈을 앞으로 몇 년 동안 안 건드리겠다는 약속을 자기 자신과 할 수 있느냐입니다. 못 하겠으면 그 돈은 여유자금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넣습니다. 금액이 작아진 대신 밤에 잠은 잘 잡니다.


참고자료

※ 이 글은 공개된 자료와 제 경험을 정리한 개인 기록입니다. 특정 상품의 매수·매도를 권하는 글이 아니며, 개인의 자금 사정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블로그 소개 및 운영 원칙」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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